Dreaming (막연하게라도 꿈을 꾸자)

막연하게라도 꿈을 꾸자.

많은 사람들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꿈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 꿈이 좀 더 구체적이고 그 꿈을 향한 현실적인 계획과 불굴의 노력이 있으면 본인이 희망하는 꿈을 이룰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꿈을 어떻게 이뤄나갈 것일까가 그리 쉬우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 꿈을 이룬 사람들이 넘쳐날 것이고 우리의 세상은 희망과 용기와 행복이 가득해질테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지 않던가? 우리의 꿈은 현실이라는 복잡한 환경에 밀려 때론  차라리 꿈을 갖지 않았을 때보다도 더 실망하고 좌절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꿈은 가져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 꿈이 꼭 커야할 필요도 없고 또 반드시 이루어질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꿈은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긴 인생의 여정 속에 한 번쯤은 꿈을 머리속이건 가슴속이건 가져보자 그러다보면 좀 더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막연하게라도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 가려면 내가 꿈이 있다는 것 자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자.

캐나다로 이민을 간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결혼 전 미국에서1년여를 생활해본 남편은 북미쪽에서 사는 것이 본인의 가슴 한 켠에 있는 꿈의 한 부분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민에 대해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듭하여 남편 한 사람을 믿고2살된 딸아이와 배속에 자리잡고 있는 아들을 품고 캐나다 밴쿠버라는 곳을 향했다. 가슴은 연로하신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깊은 눈물의 골을 담고 머리로는  뱃속에 있는 아들까지 포함해서 우리 네 식구가 무얼하며 살아가야 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남편은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겠지’ 하는 믿음은 있었지만 ‘과연 이 남자가 그럴만한 능력이나 의지가 있을까’ 하는 걱정도 문득문득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비행기에 오른 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며 시작한다는 설레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희망이라는 단어를 조용히 떠올리기도 한 듯하고 그래서 약간 들뜨기도 했던 듯하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었는데 비행기가 이룩하자 마자 제공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약간의 노근한 기운이 돌며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백인 남성이 컴퓨터를 열어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캐쥬얼한 복장을 한 그 서양 남자가 마이크로 소프트 워드에다 뭐라고 영어로 타이핑을 열심히 치다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하는 모습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나는 기회를 봐서 영어로 대화를 해봐야지 맘먹고 질문할 내용을 하나씩 속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벤쿠버에 사느냐? 한국에는 왜 왔다가느냐? 하는 일이 뭐냐? 나는 오늘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가는 거다 ‘ 등등 혼자 속으로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말할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물어보고 대화해 보려고… 한국말 토종인 내가 영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 남편에게 이참에 뽐을 내고 싶기라도 한 듯 혼자서 입을 모으고 속으로 연습을 했다. 아니 안되겠다 싶어서 아예 화장실을 가서 그 안에서 연습을 했다. 대화를 하게 될지 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 혼자 상황극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푸훗…’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을 한 번 더 갔다. 남편은 갑자기 왜 화장실을 그리 자주가냐고 속이 안 좋냐고 묻더라. 두 번의 영어 연습을 하기 위해서 갔는데 세 번째는 진짜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또 갔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어린애같고 어찌보면 유치하고 어찌보면 작은 거 하나라도 잘해보려는 의욕과 욕심이 있었던 그것이 젊음이었나 싶다. 옆에 앉은 서양인과 영어로 대화 한 번 하겠다고 혼자서 이런 머리 저런 머리를 굴리고 했다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서양인 남자과 대화를 하는 것이 단지 내 영어실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어서만은 아니였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궁금중을 해결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궁금한 것들이 참 많았다.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캐나다 밴쿠버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그림이나 비디오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멋지고 예쁜 곳인지. 그곳의 사람들은 어떤지. 그 백인 남성은 왜 한국을 다녀오는지까지도…

드뎌 적절한 기회를 잡아 나는 말을 시켰다. 그리고 나의 궁금중을 단박에 해결해버렸다. 그 백인 남자는 밴쿠버에 사는데 밴쿠버는 사계절이 있으나 크게 우기와 건기로 나뉜단다. 여름에는 지상의 천국이고 겨울에는 비가 하염없이 온단다. 전체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고 우리 가족이 밴쿠버로 이민오게 된 것은 축복이라고까지도 말해주어 내심 안심이 되었다. 한국은 업무상 다녀오는 비즈니스 트립(Business Trip)이란다. 다니는 회사 이름이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업무상 다니는 여행 경비, 호텔, 항공료 등은 회사에서 다 지급해준단다. 그 백인 남자는 대화 끝부분에 내게 어디서 영어를 배웠길래 영어를 그리 잘 하냐는 인사성 코맨트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도 영어실력이면 캐나다에서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겠다고 칭찬까지 했다. 나는 기분이 너무 업(up) 되어 갑자기 이민을 가게 된 것이 내가 정말 원해서 가게 된 최선의 선택이 된 듯했다.  지금까지 내 안에 있어왔던 두려움 걱정거리가 눈 녹듯 사라지고 희망이 넘실대는 것 같았다. 공짜라면 뭐도 좋다라더니 나는 회사 경비로 비즈니스 트립을 하는 그 서양 남자가 너무 부럽고 나도 회사에서 다 제공하는 비즈니스 트립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생겼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멋진 폼으로 영어를 쫘악 써가는 내 모습을 꿈꿔보았다. 그런 날이 내게도 올런지…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밴쿠버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에 뱃속에서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늘 녀석이 본인의 존재를 알리느라 한 번씩 빵빵 발길질을 해대는 내 볼록한 배를 보고 갑자기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뭘 하고 싶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아닌 그저 막연하게 그 백인 남성의 모습이 멋져 보여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출장을 다니는 그 모습 자체를 막연히 동경한 듯하다. 아니 개인 경비가 들지 않은 공짜 여행에 더 꼿혔는지도 모른다. 사실 비즈니스 트립은 공짜 여행으로 이해하면 안 되는데 말이다. 그때 난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저런 멋진 모습의 비즈니스 트립을 하고야 말겠다’라는. 나는 막연하지만 나 자신에게 무척 희망적인 꿈을 가졌다. 언제가는 멋진 비즈니스 트립을 할 거라는 희망을 남편에게 말했을 때 남편은 꿈이 뭐 그렇게  사소하고 막연하냐고 웃어 넘겼다. 그 꿈을 이뤄가는 과정은 막연할런지 모르나 내가 이루고자 하는 그 꿈 자체는 상당히 구체적이라고 난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 꿈을 커가는 내 아이들과도 나누었다. 아이들은 엄마꿈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응원해주었다.

그렇게 이민10년이 지난 어느 날, 내가 비행기 안에서 컴퓨터를 켜고 영어로 발표자료를 준비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내가 이민을 가던 첫 비행기 안에서 꿈꿔왔던 그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근무하던 학교에서 지원하는 경비로 컨퍼런스 참석차 말레이지아를 가고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둘 키우랴 공부하랴 늘 바빴던 나는 내가10년 전에 보았던 그 백인 남성의 여유롭고 멋진 모습이기 보다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발표자료를 준비하느라 복잡하고 분주하기만 했다. 알 수 없는 여러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민을 가던10년 전 나의 모습이 문득 겹쳐졌다. 그리고는 잠시 그 동안 내 막연한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왔던 지난10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영어 몇 마디를 대화해보고자 화장실을 두 서너 번이나 갔다왔던 그 기억들이 아직도 새록새록 남아서 내 입가의 작은 미소를 만들어 냈다. ‘후훗…’

꿈은 구체적이고 현실 가능할 수록 좋겠지. 그러나 희망을 갖고 꿈을 갖는 것 자체가 꿈도 없이 사는 것 보다는 백 번 낫다. 조사에 따르면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보다 더 부지런하고 본인이 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한다.

나는 날마다 꿈을 꾼다. 때로는 주어진 것에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자라는 소박한 꿈을 때로는 어울리지도 않는 근거없는 꿈을 꾸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내가 가진 생각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과 나눈다. 이젠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두 아이들은 아직도 크고 작은 꿈을 꾸는 엄마를 보고 열심히 살라고 마치 동생에게 타이르듯 격려를 하기도 한다. 혼자만 품고 있는 꿈은 동기부여를 이어가기에 벅찰 때가 있지만 내 입 밖으로 나온 나의 크고 작은 꿈들은 체면 때문에라도 내가 열심히 일궈가게 만든다. 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들을 처음부터 조목 조목 세워가는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고 부러운 것들이 있으면 먼저 꿈을 꾼다. 꿈은 언제든 무엇이든 꿀 수 있기 때문에 꿈인 것이다. 꿈을 많이 꾼다고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고 꿈이 있다고 벌금을 무는 것도 아니니 꿈을 꾸자.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적은 것 보다는 많은 것이 낫다. 그 많은 꿈 중에 하나라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고 채워가는 과정에 우리는 무언가를 얻게 된다. 그래서 막연하게라도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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