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s passing (어머니와의 아주 먼 이별)

어머니와의 아주 먼 이별 

2017년 7월 23일 새벽 4시 그림처럼 아주 천천히 어머니의 숨소리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해드린 것도 없이 많은 약속만 해왔던 내 자신을 원망하면서 잡고 있던 어머니 손을 놓아 드려야 했다. 미련 없이 편히 가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 새벽 한 귀퉁이에 가누기 힘든  외로움과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어머니께서는 투명한 창호지가 바람에 날리듯 너무도 조용하게 86년의 그 긴 여정을 마치고 이제 당신 만의 또 다른 긴 여행을 그렇게 떠나셨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면서도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그 순간에 아무 것도 없었다. 

덥고 온 몸이 후덥지근 달아오르던 그 여름의 중심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를 그렇게 말없이, 어머니 앞에서 한 번 크게 울어보지도 못 하고 보내드렸다. 한 번 가면 다시는 오지 못 한다는 그 먼 곳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리며 가슴 가득 뜨거운 안녕을 고했다. 맘 깊이 쌓인 아쉬움과 아물기 힘든 아픔의 눈물을 삼키며 태연한 척, 의연한 척, 거짓된 절제로 보내드렸다. 이제는 더 이상 아픔없고 더 행복한 하늘나라로 가시는 어머니를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린다고 나 자신을 위로하고 또 위로하고… 

나의 휑한 마음만큼이나 어머니가 떠나시던 그 날은 하늘이 구멍난 듯 종일 비가 내렸다. 하늘이 나를 대신 해서 더 많이 울어주는 듯 쉼없이 장대비가 몰아쳤다. 우산은 그저 얼굴과 머리를 가리기 위한 것일 뿐 온 몸이 비에 젖고 말았다. 그러나 그 많은 비 덕분인지 오히려 무더위를 더 이상 느끼지 못 할 정도였다. 어머니와 내가 만들어왔던 추억들이 그 요란한 장대비 안에 조용히 숨죽여 흘러가고 있었다. 

염려했던 것 보다 모든 것이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장례식장도 교통이 좋은 곳에 잡혔고 형제가 많지 않은 우리 가족들에게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이미 많은 것을 어머니께서 생전 건강하실 때 다 준비해 놓으셔서 우리는 어머니께서 평소 당부하신 말씀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조차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두셨는지 우리는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과정에서 실감하게 되었다. 마음 속에서 몇 번이고 어머니의 지혜로움과 자식 사랑에 감탄을 하게 되었다.

한국을 떠난 지 20년이 넘었기에 한국에 아는 사람도 몇 안 되었으나 고마운 친구들이 어머니 떠나신 당일에 많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일어나자 마자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지방에서 올라 온 친구가 있었다. 말없이 곁에서 긴 하루를 지켜봐주며 내게 위안을 주었다. 한 친구는 맨 마지막까지남아서 내 어깨와 등을 주물러 주고 갔다. 한 친구는 예쁜 국화꽃을 한 다발 들고 왔다. 꽃을 참 많이 좋아하셨던 어머니께서 좋아하셨을 거라 생각했다. 휴일에 몇 시간을 운전해서 와 준 친구들. 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머니 떠나신 그 날을 덜 외롭고 덜 슬프게 보냈다.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께서 침대에 누워계시지 않아도 되는 더 좋은 세상에 가실 거라는 믿음으로 호상이라며 축복하고 위로하였다. 멀리 밴쿠버에서도 위로와 성의를 다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고마운 마음들을 나는 오랫동안 잊지 않으려 한다. 함께 웃어주고 울어주고 이것 저것 챙겨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기에 떠나시는 어머니께서도 나를 염려하는 마음 놓으셨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튿날은 어머니와의 이별을 핑계로 오랫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재회했다. 익숙한  얼굴들 속에서 그동안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문득 사람 사는 것이 만나고 헤어지고, 웃고 울고, 그렇게 피고지고 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듬어주고 살기도 바쁜 세상을 왜 미워하고 돌아서고 멀리하며 사는  것일까? 아무 것도 아닌데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텐데… 누구도 대신 해 줄 수도 대신 가 줄 수도 없는 길을 왔다 갈 뿐인데 우리는 왜 살아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갈까?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평소에 갖지 못했던 이런 저런 생각들이 겹쳐 지나갔다. 

언니네가 절을 다니기에 모든 장례 절차는 불교식으로 하였다. 마지막 날 염을 할 때는 많은 분홍빛 종이 연꽃을 만들어 어머니 시신에 넣어드렸다. 아름다운 연꽃과 곱게 단장한 어머니의 얼굴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떠나보내는 자식들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주었다. 어머니 모습을 뵙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내게 늘 크고 높기만 하셨던 어머니가 아주 작은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어머니와 평소 사이가 좋았던 형부는 마지막으로 “어머니 많이 보고싶을 거에요” 하며 울먹였다. 그 말이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서 지금도 가끔 나의 눈을 시리게 할 때가 있다. 누구든 때가 되면 떠나야 하고 한 번은 다 가야 하는 길. 피할 수 없는 길. 아무리 많은 것을 생애에 이루었다 해도 떠날 때는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 가는 외로운 길. 그 길을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떠나셨다. 

그간 어머니와 딸이라는 관계로 몸은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을지라도 우린 오랜 시간을 함께 사랑하고 애틋해 하며 지내왔다. 어머니의 딸로 세상에 태어나 지난 49년을 나는 어머니를 아끼고 사랑하고 때론 내가 어머니가 원치 않는 길을 선택했을 때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나의 결정을 믿고 든든하게 지켜봐 주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소리를 내어 크게 다퉈 본 기억이 많지 않다.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를 실망시키면 요란한 소리로 나를 꾸짖거나 질책하기 보다는 항상 생각할 시간을 주셨다. 어머니는 어른이 좋은 모범을 보일 때만 아랫사람이 올바른 것을 배우고 제대로 된 길을 갈 수 있다고 항상 어른들의 모습을 강조하셨다.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삶의 철학이 필요한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 또 좋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노력이 수반되는 지, 난 학교에서 책을 통해서 배우기보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태도와 실천에서 몸소 체험하고 배워왔다. 어머니는 내게 그렇게 많은 가르침과 지혜를 주셨던 분이셨다. 

그렇게 총명하시던 어머니께서 한 해 한 해 달라지셨다. 어머니의 기억은 조금씩 엷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어머니의 눈빛은 예전보다도 더 맑아지셨다. 어머니의 맑은 두 눈을 보면 나는 어머니께서 그 모든 시간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믿었다. 믿음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전해지는 눈빛과 엷은 미소에도 묻어났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는 그 감정들은 무언의 몸짓과 작은 눈빛과 여린 손길과 옅은 숨소리에서 조차도 전달되고 느껴졌다. 지난 4년 동안 어머니는 당신 의지로는 손가락 하나도 온전히 움직이지 못하신 채 침대를 의지하며 당신의 여린 눈빛만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언어로 소통을 만들어 내셨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고된 여정을 끝내고 훌훌 털고 떠나셨다. 

잘 가셨다! 잘 가신 거다! 진짜다! 캐나다 밴쿠버라는 먼 이국에 사는 막내딸을 보고 가시려고 준비를 단단히 하셨다. 그 힘든 고통을 참고 막내딸이 돌아와 당신 마지막 가시는 길을 준비시키시려고 어머니는 참고 또 참고 기다리셨다. 얼굴에 붉은 수포들이 생기고 그것들이 굳어 딱딱해지고 다 떨어질 때까지 어머니는 참고 기다리고 사력을 다해 기다리셨다. 나를… 어머니는 내가 당신과의 갑작스런 이별로 인해 아파하지 않도록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건강한 우리에게는 하루가 24시간이었겠지만 어머니에게는 한 달 아니 365일 일 년 보다도 더 긴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더는 못 참겠다고 떠날 준비를 하셨다. 편히 가시도록 놓아드려야 하는 것인 줄 머리로는 알면서도 끝내는 아쉬움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께 많은 주사바늘과 숨소리만 연장하는 고통을 드렸다. 당신을 놓지 못하는 가슴 속 미련이 미웠다. 내 미련한 사랑이 어머니를 더 힘들게 했다. 혹시나 하는 기적같은 희망조차도 없으면서. 그래도… 그래도… 배가 쑤욱 들어간 어머니 배를 보며 콧줄을 연결해서라도 어머니 배를 채워드리고 싶었다. 배가 고파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질 않은가… 호흡이 멈출까봐 더 이상 나오지도 않는 가래를 빼내기 위해 몇 번이고 호스를 삽입하고 그렇게 어머니의 채온이나마 좀 더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더 이상 밀어낼 수 없는 느낌이 왔다. 이제 긴 작별을 준비해야 하는 구나 하고…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몇 일 전 어느 순간 불현듯 기분이 이상했다. 병원 화장실에 가서 소리내어 울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날은 집에 돌아와 밤을 새워 울었다. 하룻밤을 통채로 울어본 것은 태어나서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그날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어야 할 눈물까지 다 흘려보낸 것 같다. 그것은 어떠한 언어로 설명되거나 표현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나만이 느끼는 무거운 감정이었다. 어머니와 긴 이별을 난 그날 혼자서 그렇게 미리 충분히 연습해 두었다. 그리고 장례를 지내는 실전에서  난 우리 어머니 잘 가셨다고! 정말 좋은 곳으로 가실 거라고. 천당에 가실 거라고. 극락에 가실 거라고. 그렇게 축복해 드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그 이별의 빛깔이 무슨 색이건, 이별의 장면에 누가 주인공이건 아니건 누구에게나 슬픔이고 아픔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서 차분하고 담대해질 수 있는 것은 위선일까? 아니면 깊은 아픔을 극복해가는 뜨거운 초연함일까? 한 동안은 그리움에, 보고픔에 어머니가 내 눈 안에, 내 가슴 안에, 내 머리 안에 가득차겠지만 시간이 흘러가서 내 감정과 그리움들이 무뎌지기를 기다리련다. 무엇이? 누가? 내 어머니 떠난 그 자리에 넘쳐나는 그리움을 채워주고 치유해줄 수 있을 지는 모르나 그래도 아쉬움 없이 사랑했던 어머니였으니 너무 슬퍼하지 않으려 한다. 남아 있는 내가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야 어머니도 하늘나라에서 더 행복하실 거라 생각하자. 머리가 둔해지고 가슴이 다른 현실의 것들로 다 차버려 더 이상 어머니라는 단어가 내 그리움의 창고에 들어갈 자리가 없을 때쯤이면 그때쯤이면 난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의 언저리에 남아 있을런지…  그때쯤이면 내 머리와 가슴 속에 간직된 어머니와 함께 했던 수많은 추억들을 하나 하나 곱게 펴보고 다시 사알짝 접어둘 수 있겠지. 때론 마음 둘 곳 없은 그리움이 몰아쳐 울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론 이 세상 언젠가 어느 곳에서 어머니와 내가 함께 웃었던 그 순간들이 축복이었음을 감사하기도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