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Miss Korea! (헬로우 미스 코리아!)

HELLOW MISS KOREA! (헬로우 미스코리아)

퇴근 후에 아무 생각없이 쉬고 싶을 때는 CBC News 를 보기보다는 유튜브를 통해서 한국 가요를 듣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실컷 웃게 된다. 내게 영어는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일하고 공부하고 캐나다인 친구들을 만날 때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그러나 정작 내가 위안을 받고 안식을 얻는 것은 한국말로 된 한국 문화를 즐길 때가 더 많다. 아직은 영어가 내 뼛속까지 깊게 들어와 내게 찐한 향수를 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언어를 배우고 그 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고 다양한 겸험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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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침 출근 길에 우연히 고정시킨 라이오 채널에서 유쾌한 목소리의 아나운서들의 주고받는 얘기중에 나온 얘기다. 남자 아나운서가 한국에서 온 여성분에게 인사를 하는데 이름을 몰라서 헬로우 미스코리아(Hello Miss Korea) 라고 했더니 그 여성분이 너무 좋아하더라는 거다. 한국에서 ‘미스코리아’는 미의 상징이니 이 한국 여성분이 그 인사를 받고 좋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데 그 아나운서는 그 여성분이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그 때는 몰랐다는 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피시식 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누가 나에게 미스코리아라고 했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기분이 좋아졌을 거다. 여기에는 미스코리아라는 단어 안에 한국의 문화적 맥락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재미난 몇 가지들이 더 있다.

내가 아는 어머니께서 하루는 거실의 소파를 새로 사서 집으로 옮기고 있는데 옆집에 사는 백인 이웃 죤(John)하고 마주쳤단다. 그래서 성격이 활달한 이 어머니는 오늘 기분이 어때(How are you today?)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죤이 소파소굿(so far so good)하더란다. 그 어머니는 새로 산 소파(sofa)가 좋다라고 칭찬하는 말인줄 알고 땡큐(Thank you)! 하고 들어왔단다. 들어오는 중에 이 어머니는 남편에게 “죤이 뭐 물건보는 눈은 있드라구” 했더란다. 나중에 죤의 말 소파(so far)가 본인의 소파(sofa) 좋다라는 것이 아니라 잘 지내고 있다라는 것을 알았단다. 그래서 이 일이 있은 후 서양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웨이터나 웨이트리스가 중간에 식사가 어떠냐 하고 한 번씩 점검을 하면 이 어머니는 본인의 영어실력 향상 확인 사살을 위해 꼭 소파소굿(so far so good)이라 하신단다. 함께 듣고 있던 어머니들과 배꼽이 빠져라 웃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 이야기는 비슷한 영어 발음에만 초점이 가있고 소파소굿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상황과 맥락(Context)의 친숙도가 없어서 구분이 안 된 경우이다. 하기야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면 항상 “하우 알 유(How are you)?” 라고 물으면 “아임 파인 땡큐(I am fine, thank you)” 라는 공식 표현으로 시작한 우리의 영어공부이니 예상했던 공식과 다른 표현이 등장하면 당황하거나 우스운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는 아는 분이 신호를 기다리려고 차를 세우고 있는데 우연히 옆을 보니 옛날 영어회화를 가르쳤던 백인 선생님 수잔(Susan)이 옆 차선에서 기다리고 있더란다. 안그래도 그 수잔 선생님을 아들 영어공부를 위해서 만나고 싶었는데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연락할 길이 없었단다. 그 어머니는 너무 반가워서 창문을 내리고 하이 수잔(Hi Susan) 하고 부르니 수잔도 너무 반가워하더란다. 그래서 잘 지내냐 어쩌냐 한 두어 마디를 했는데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노란불로 옮겨가더란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져서 수잔선생님 전화번호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잔, 전화번호 좀 알려줘”라고 한국말로 했단다. 그런데 수잔이 그냥 쳐다보고만 있더란다 그래서 한 번 더 손동작과 함께 재촉하며 “수잔 빨리 빨리 전화번호”라고 했단다. 신호등은 노란불에서 파란불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차가 출발해야 했다. 그 아는 분은 ‘아니 왜 내 말귀를 못 알아듣고 난리야’ 하면서 혼자 투덜 거리고 보니 급해서 본인이 한국말로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했다는 것을 알았단다. 이 분이 “난 보통 때는 영어를 좀 굴려서 할 정도로 괜찮은 영어인데 진짜 필요할 때, 예를 들면 뭘 따져야 할 일이 생기거나 급해지면 영어가 잘 안 나와!” 라고 불평하셨더니 옆에 계시던 다른 분이 ” 중요할 때 영어가 되야지 그게 진짜 영어실력이쥐!” 라고 핀잔을 주셔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 이야기는 내가 겪은 경험담이다.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 종로에 있는 시사영어사에서 무료 프리토킹(Free talking)하는 기회가 있었다. 주로 대학생들이나 회사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직장인들이 모여 그날 주어진 주제를 영어로 그룹토론하는 모임이었다. 대상은 아무나 참석할 수 있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었다.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도 있었고 회화를 유창하게 하고자 목표를 두고 오는 대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참여자들의 영어 유창도는 다양했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시간이 될 때면 그 모임에 자주 나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제한된 내 실력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앞뒤 모르고 용감하게 영어를 하던 때였다. 틀리면 ‘그래서 내가 미쿡 사람이냐고라’ 하면서 무댓보로 덤비며 시작한 영어회화였다. 하루는 그날 주제가 평소 내게 익숙한 주제가 나온데다 그룹 멤버들이 전체적으로 말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은 내가 작정하고 말을 좀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리속에서는 무엇을 말할까 한국어로 생각하고 입으로는 그것을 영어로 번역해가는 동시작업을 해가며 열심히 토론에 임하고 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그런데라는 말을 넣으려고 했는데 영어인 ‘바이더웨이(by the way)’가 나온 것이 아니라 한국말 ‘그런데’가 나온 것이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영어로 걸러야 하는 부분을 놓친 것이다. 더 우스운 것은 내가 ‘그런데’를 마구 꼰 “그러운뒈에”라고 발음 했단다.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내가 뭐 어려운 단어를 얘기하는 줄 알고 있었겠지. 영어에 뭐 그런 단어가 있나보다 하고. 아마 내 근거없는 자신감에 모두 그런가보다 했을지도… 푸후우…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토론이 끝난 후 나중에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 “그러운뒈에”를 듣고 너무 웃겼는데 … 더 웃긴 건 모두가 너무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는 거였다고…

사람은 급하고 감정이 들어가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특히 본인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으면 교양이고 뭐고 다 벗어던지고 앞을 다투기 마련이다. 평온할 때는 모두가 교양있고 인성이 반듯해보여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본래 자신의 성숙도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본인이 여태 살아온 방식을 취하게 된다. 왜냐면 그 방식이 더 익숙해서 그 사람에게 더 편하니까.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쉽고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을 하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평상시에는 배운대로 차분하게 해낼 수 있으나 감정이 이입되면 갑자기 더 편한 방식으로 표출하나보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운뒈에”라고 꼬아서 발음했을 나를 생각하면 정말 우습고 부끄러워 죽겠다. 나는 캐나다인 직장 동료나 친구들에게도 가끔 “있잖아(요), 근데(요)…” 등으로 얘기를 시작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들과 친숙해지다보니 나도 모르게 한국어가 튀어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영어로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해도 내게는 한국어가 내 감정을 표현하는 최고/최선의 도구라는 의미다. 뉴질랜드 출신의 유명한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롬하레(Rome Harre)는 언어, 사회적 관습, 그리고 개개인의 문화적 요소 등은 감정을 만들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한국어를 말할 때의 내 목소리 톤과 표정 그리고 몸가짐은 영어를 말할 때와는 사뭇 다름을 느낀다. 이것이 꼭 의도해서는 아닌데 정확한 의사전달을 하려고 하다 보니 그 언어와 연결된 문화적 요소가 함께 작용하는 것이다. 언어와 문화 그리고 감정 이 세가지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다.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로 말할 때는 두 손을 모으고 얘기할 때가 많고 또 연세가 많이 드신 분과 얘기를 나눌 때는 저절로 내 허리가 조금 구부려지고 눈빛은 아래를 향하게 된다. 항상 그렇다 안 그렇다 에스(Yes) 노(No)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얘기의 앞부분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원할유를 넣은 후 주요 포인트는 나중에 얘기한다. 부정적인 얘기를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영어로 말할 때는 먼저 에스(Yes)인지 노(No)인지를 말하고 나서 부연 설명을 한다. 내 두 눈은 상대방의 눈을 직시하고 대체적으로 목소리 톤도 높아진다. 혹시나 엑센트가 있는 내 영어발음으로 상대가 알아듣기 못하는 일이 생길까봐  보통 때 톤보다 더 크고 확실하게 영어를 하다보니 어느덧 내가 영어를 크게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가 영어하는 모습을 통해서 나를 처음보는 사람은 내가 똑부러진 데가 있고 나아가 좀 기가 쎈 여자일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허당이고 어리버리할 때가 많은 사람이다. 이렇듯 언어는 의사소통이라는 언어 자체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많은 문화적 요소를 동반한다. 심지어 언어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identity)까지 말해준다.

그렇다면 이민을 가서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한국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꿔서 한국에서 글로벌화에 발맞춰 너도나도 영어배우기에 열심인 것은 그 언어의 문화와 정체성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언어의 문화를 함께 배우는 것이고 그 문화를 배우는 것은 그 문화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몇 개국어를 할 줄 아느냐를 넘어서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 한국 사람들에게 미스코리아가 갖는 미의 상징성을 모르고 단순히 내 이름을 잊어버려서 ‘헬로우 미스코리아’라고 부르더라도 난 기분좋게 대답하련다. 왜냐하면 이효리의 Miss Korea 에 나오는 가사처럼 난 “세상에서 제일 가는 걸(Girl)이야, 누구나 한 번에 반할 일이야, Because I’m a Miss Korea”이니까… 후웃!